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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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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뮈엘 베케트
출판사 : 워크룸 [출판사 바로가기]
출시일 :2016-12-31
크기 :125 × 210mm
페이지 :112
번역 :유예진
편집 :김뉘연
디자인 :워크룸 프레스
ISBN :978-89-94207-77-3 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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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뮈엘 베케트가 영어로 쓴 문학 평론 『프루스트』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번역은 프루스트 전공자이자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능통한
유예진이 맡았다.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전 청년 베케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해 쓴 『프루스트』(1931)는
베케트의 첫 산문 단행본이었다.


베케트가 바라본 프루스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뮈엘 베케트(1906–89)와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이 책은 언뜻
공통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이는 두 작가 사이를 잇는 증거다.

『프루스트』를 쓰기 전 베케트가 발표한 글들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글 「단테…브루노. 비코‥조이스」(1929), 단편소설
「가정」(1929), 이탈리아 및 프랑스 작가들의 시와 산문을 번역한 글들, 그리고
데카르트에 대한 98행 시 「호로스코프」가 실린 동명의 시집(1930) 한 권.
이렇게 비평과 번역, 창작에 두루 관심을 가진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였던
베케트는 파리의 고등 사범학교에서 계약직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중 영국의
채토 앤드 윈더스 출판사가 프루스트와 관련된 단행본을 기획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책을 집필하면서 파리에 더 머물기로 한다.

베케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일곱 권 중 첫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를
읽은 감상은 사실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이상하게
균형 잡히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등 초반에는 글의 방향을 확실히
잡지 못했다. 결국 베케트는 자신이 섭렵해온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의 여러
작가와 철학자들을 동원해 프루스트를 이해하고 표현하려 했는데, 그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는 가운데, 방대한 소설의 구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자유로운 형식, 집중된 내용

문학 평론 『프루스트』는 형식 면에서 자유롭다. 여느 학술서와 달리 규범에
매이지 않고, 다만 몇몇 주석을 통해 인용문 출처를 밝히는 정도다. 그
배경에는 애초 학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결국 작가의 길로 접어든 베케트가
있다. 베케트는 2년간의 강사 생활 이후 교직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을뿐더러
학계에 회의를 갖게 되어, 결국 논문 대신 『프루스트』를 택해 자유롭게
집필했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내용은 철저히 소설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중하고 있다. 베케트는 책 서문에서 프루스트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면모나 시인, 에세이 작가, 번역가로서의 모습은 이 책에 없다고
선언한 후 글을 시작한다. 과연 글은 오직 작품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베케트는 프루스트의 편지, 시, 에세이 등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소설에만 집중한다.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나’는 대화하고, 편지
쓰고, 우정을 나누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다르며, 그 예술가를 평가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은 오로지 작품이어야 한다는 프루스트의
작가론이 드러나는 미완성 비평서인 『생트뵈브에 반박하여』가 1954년에야
출간되었음을 고려하면, 베케트의 이런 입장은 프루스트를 본능적으로
이해한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 옮긴이, 「해설」, 79면

우선, 베케트는 작품의 순차적인 흐름을 따르는 대신 그 ‘내적 연대’를 따른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 『되찾은 시간』 중 주인공
마르셀이 연회에서 작가로서의 소명을 재발견하는 대목을 글 서두에서
분석하면서 이 작품을 건축물에 비유한다. 당시 구조가 부재한다고 비판받던
이 소설이 실은 디딤돌 위에 다양한 요소들이 쌓여 건축물로 형성되었음을
간파한 것이다. 베케트의 분석대로, 오늘날 프루스트의 소설은 장인이 오랜
시간 여러 양식을 혼합해 정성껏 완성한 성당에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베케트는 프루스트의 작품이 ‘시간’에 관한 것임을 감지한다. 공간은
시간 안에 종속되며, 주체와 객체 또한 시간 안에서 그 관계가 정해진다.
시간의 희생물이자 포로. 프루스트의 인물들은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지
못하거나, 혹은 손에 넣어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따라서 불행하다.

정해져 있는 실패. 베케트의 비관주의가 이렇게 드러난다. 주체와 객체에 이어
기억과 습관 역시 시간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시간 속에서 기억과
습관은 생존할 수 없다. 역시, 이미 결정되어 있는 비극이다. 다른 한편 기억과
습관은 시간과 함께 삼두 괴물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권태에 의한 습관은 삶을
지배하지만, 삶을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습관이 있기에 두려움과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시간 안에서의 주체와 객체, 기억과 습관이라는 맞물림은 베케트의 글
전반에 깔려 있는 이중 구조를 대변한다. 시간은 죽이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하는 텔레포스의 창처럼 이중성을 띤다. 베케트가 본 프루스트의 시간은
창조자이자 파괴자다.” — 옮긴이, 「해설」, 83면
한편 베케트는 쇼펜하우어의 음악 이론을 프루스트가 어떻게 소설에
접목하는지를, 역시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언급하며 글을 맺는다.
베케트의 『프루스트』는 당시 비난받았던 프루스트의 문체에 거의 처음으로
찬사를 보낸 글이다. 또한 프루스트의 소설을 (당시 연구자들이 대개 앙리
베르그송을 통해 바라본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를 통해 읽어내며 작품 속
독일 낭만주의 철학의 특징들을 발견해냈는데, 이러한 해석은 40년 정도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베케트는 『프루스트』 이후, 적어도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학술적인 논문과 연구서를 쓰기에 지나치게
자유로웠던 그는 결국 이 책이 출간된 후 교수가 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가 된다.


책 속에서

프루스트의 창조물은 이러한 지배적인 조건과 환경, 즉 시간의 희생자다.
하등한 유기체로서 단지 2차원만을 알고 있다가 갑자기 높이의 신비와
대면하게 된 희생자다. 희생자이자 죄수다. 시간과 날들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다. 내일로부터도, 어제로부터도. 어제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까닭은 어제가
우리를 변형시켰거나, 어제가 우리에 의해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기분 또한
바뀌었기에 중요하지 않다. 어제는 그 단계를 넘은 기점이 아니라, 과거의 닳을
대로 닳은 길에 놓인 조약돌로, 그 무겁고 위협적인 존재는 돌이킬 수 없이 우리의
일부로 우리 속에 있다. 우리는 어제 때문에 지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어제의 재앙을 경험하기 전의 우리가 더 이상 아니다. 어제는
재앙의 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에 있어서 실제로 재앙이 일어났다는
말은 아니다. 대상의 선하거나 악한 기질은 어떤 현실성도 의미도 없다. 몸과
마음의 즉각적인 기쁨과 슬픔은 모두 불필요하다. 어제는 현실성과 의미를 갖는
유일한 세계, 즉 우리 잠재의식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그 세계는 균형이 깨졌다.
우리는 탄탈로스와도 같은 처지에 있다고 함이 정확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유혹에 빠지도록 내버려둔다. 또한 우리를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상동곡(常動曲)은 아마도 한층 다양하리라. 어제 열망하던 것들은 어제의
자아에게는 유효했지만, 오늘의 자아에게는 아니다.
(본문 13–14면)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비극적인 관계는 실패가 예고된 인간관계의 전형이다.
나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임의적인 프루스트의 비관론을 소설의 중심에
있는 이 재앙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각각의 종양에는 적절한 메스와 붕대가
있기 마련이다. 기억과 습관은 시간이라는 암이 가지고 있는 종양이다. 기억과
습관은 프루스트 소설의 가장 단순한 에피소드를 통제하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분석하기에 앞서 작용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기억과 습관은 한
건축가의 지식이자, 브라흐마에서 레오파르디에 이르는 모든 현자들의 지혜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신전의 아치형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그 지혜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신 없애버린다.
(본문 17면)

프루스트는 기억력이 나빴다. 그의 습관 또한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는 그의
기억력이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기억은 일관되고 판에 박힌 것으로, 빈틈없는 습관의 조건이자 기능이다. 또한
발견할 때 쓰는 도구가 아닌 참고할 때 필요한 도구가 된다. 이런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나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를 상습적으로 말하고 다니는데, 이 표현
자체가 그의 기억의 가치를 나타낸다. 그는 어제를 기억할 수가 없다. 내일을
기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단지 어제라는 것이 저 아래 가장 습한
날로 기록된 8월의 공휴일과 함께 빨랫줄에 매달려 마르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만 있다. 그의 기억은 빨랫줄이고 과거의 이미지는 세탁이 된 더러웠던 빨래
더미로, 과거의 이미지는 그가 기억해내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 생기면 즉각
달려오는 충실하고 헌신적인 하인과 같다.
(본문 24면)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 – 89) —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해낸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유예진 —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보스턴 칼리지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를 전공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루스트의 화가들』과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을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를 옮겼다.


표지 사진
EH(김경태) —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전공했다. 「스트레이트—한국의 사진가 19명」,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등 여러 전시에 참여했으며,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와 『로잔 대성당 1505~20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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