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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큘로 006: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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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영상, 또는 이미지를 앞에 둔 사람에게 어둠은 매우 까다로운 존재이다. 어둠을 빛과 이미지의 부재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어둠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둠은 이미지 외부에 있는 블랙 바(Black Bar) 정도로만 취급하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쉽고 효율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둠을 중심에 두고 이미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보기에 따라 어둠은 모든 이미지들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이라 볼 수도 있고, 이미지가 끝내 가 닿지 못하는 어떤 한계 영역이라 볼 수도 있다. 또는 어둠이란 존재 자체가 굉장히 풍성한 볼거리를 담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어둠을 이미지와 빛의 부정으로 정의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유의미한 존재라고 가정해보았다. 나아가 어둠에서부터 시작해 우리를 둘러싼 빛과 이미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했다.


이번 특집에는 7명의 필자가 참여하였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어둠의 존재를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김보년은 한국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작년부터 새롭게 선보인 ‘블랙 스크린’ 극장을 방문한 뒤 그 경험을 들려준다. 영화 관람의 필수 조건이었던 어둠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미래의 영화관의 풍경을 약간의 근심과 함께 상상해본다. 이한범은 문세린 작가의 작업을 통해 어둠을 어떻게 창작 행위의 주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드러나는 어둠의 성격은 어떤 것인지 고민한다. 특히 어둠이 ‘나’를 보게 하는 조건이자 매체라는 지적은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김지훈과 남수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어둠의 계보학을 작성하였다. 이들은 모두 극장 안의 어둠을 공통적으로 언급하지만 관점의 미묘한 차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김지훈은 극장 안의 어둠이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제도임을 알려준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다양한 영사 장치를 예로 들며 ‘검은 스크린’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이미지와 어둠의 계보를 상상하게 만든다. 남수영 역시 인공적인 어둠의 존재로 글을 시작한 다음 광학 장치의 원리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투명하게 보기와 반대의 뜻을 가진 ‘옵스큐란티즘’을 제시하며 지각 행위에서 오랜 시간 밀려나 있었던 어둠의 존재를 우리 앞에 정면으로 세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둠은 빛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둠’이어야 하는 고유한 존재이다. 권세미는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영화 <언더 더 스킨> 등의 작품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들이 어둠을 어떻게 불러오고 사용하는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활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할 어떤 것이다. 홍철기와 박준상은 어둠이란 개념을 정치・경제적인 맥락으로 과감하게 확장시킨 글들을 보내왔다. 홍철기는 오랜 기간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중세 이후의 합리주의에 대해 새롭게 문제를 제기하며 번역, 혹은 재현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어둠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절대 어둠을 피할 수 없으며, 나아가 어둠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끌어안을 필요를 느껴야 한다. 박준상은 어둠과 자본주의를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그는 자본의 관념이 우리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독특한 주장에서 시작하여 그 저항의 의미로 어둠을 호출한다.


그리고 두 개의 인터뷰와 한 개의 대담을 실었다. 현소영은 김아영과, 정혜선은 에릭 보들레르와 그들의 영상 작업에 대한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클레르 애더튼, 니콜 브레네즈, 에릭 보들레르는 퐁피두센터에서 아다치 마사오의 <약칭: 연쇄사살마>를 상영한 뒤 서로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이들의 작업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더 깊은 이해의 장이, 이들의 작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미지와 영상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번 호 특집의 제목은 ‘어둠’이다. 처음에는 보다 근사한 제목을 붙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였지만 필자들의 글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결국 이 제목으로 마음을 굳혔다. 어둠 그 자체와 직면할 수 있는, 생각보다 어려운 행위의 유용한 참고서 역할을 하길 바란다.

(김보년)



목차


Front

003 김보년


특집 : 어둠


009 김보년 영화관은 정말 흰 스크린과 어둠을 필요로 하는가? : 한 극장 직원의 SUPER S 방문기

015 이한범 왼발을 뒤로, 다시 오른발을 뒤로, 그리고 어둠을 껴안듯이

021 김지훈 암흑극장, 검은 스크린, 암실: 인공 어둠과 영화의 계보

029 남수영 어둠을 이름 없이 놔두어라: 그 무엇도 닮지 않은 반영

040 권세미 어둠 속의 일인극 혹은: 앨리스의 독백으로부터 일레븐의 초능력에 이르기까지

047 홍철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있는가?

054 박준상 자본과 어둠


Interview

062 현소영 ‘불완전성’을 말하기 위한 언어, 혹은 형식의 발명을 향해: 김아영 작가와의 대화

079 정혜선 풍경-이해하기 위해, 혹은 이해하지 않기 위해: 에릭 보들레르와의 대화

109 니콜 브레네즈, 에릭 보들레르, 클레르 애더튼 풍경론의 F


책 속에서


“하지만 SUPER S에는 흰 스크린 대신 검은 스크린이 있다. 더 이상 이미지를 ‘반사’할 필요 없이 스스로 ‘디스플레이’하는 스크린이 등장한 것이다. 기존의 흰 스크린은 거대한 프로젝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즉 영화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중재자였다. 하지만 검은 스크린은 프로젝터가 없이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영화의 이미지는 더 이상 그림자로 존재하지 않으며, 더 이상 작은 원본 이미지를 확대하지도 않는다. 늦게 들어온 관객이나 커다란 날벌레의 존재가 스크린에 맺힌 이미지를 훼손할 염려도 없다. 숨길 수 없는 강한 빛으로 영화의 실체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뒤쪽에 존재한다는 걸 의식하게 만들던 영사실 역시 사라졌다. 이제 영화의 상영본은 관객과 함께 있을 필요 없이 상영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동안 플라톤의 동굴을 떠올리며 내가 저 먼 옛날의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상은 머쓱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동굴 벽의 그림자를 보기 위해 불을 피울 필요가 없다..“


(“영화관은 정말 흰 스크린과 어둠을 필요로 하는가?: 한 극장 직원의 SUPER S 방문기”, 《오큘로》 006호 중에서)


“시각이 제한될 때 다른 감각이 강화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시각적인 매개가 현재의 사회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이 된다는 차원에서 그것이 없으면 무척이나 불편할 뿐일 테다. 그러나 그 편의와 매끄러움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몸은 어떤 주체가 되는가? 끊임없이 깨어 있고 노동하는 명징한 생산의 장소에서 몸은 주어진 자리를 확정하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빛의 너머는 죽음뿐이다. 그러나 어둠의 너머에는 몸의 현존이 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것, 감춤으로써 드러나는 것은 결국 감각의 주체일 것이다. 더 이상 오늘날 도깨비불을 상상하는 미신은 없다. 대신 계몽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엇보다 명백하게 실존적 주체의 목숨을 위협하는 약자를 향한 범죄만이 있을 뿐이다. 도깨비불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나 홀로 세계를 대면했을 때만 떠오르는 허구이다. 모든 것이 낱낱이 비춰지고 데이터로 환산되는 여기 이곳에서, 모든 것이 바라봄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나를 나 자신으로 수렴시키는 매개의 장소는 드물어 보인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어둠이 필요하다.”


(“왼발을 뒤로, 다시 오른발을 뒤로, 그리고 어둠을 껴안듯이”, 《오큘로》 006호 중에서)


“빛은 글을 쓰고 이미지를 새겼다. 그렇게 빛은 여러 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빛을 비추며 보려고 하는 자가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은 참된 어둠이다. 어둠에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면 태초의 어둠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일정한 양의 빛이 그만큼의 어둠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빛을 뿌려준다 해도 부정의 존재인 어둠을 어디로 가져갈 수는 없다. 빛과 어둠을 등가교환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빛과 함께 어둠을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데리다에 의해 해체되었다. 해체된 것이 비록 그 액면가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해체는 어둠의 교환 불가능성을 잘 설명해 준다.”


(“어둠을 이름 없이 놔두어라: 그 무엇도 닮지 않은 반영”, 《오큘로》 006호 중에서)


“우주 재난의 구현을 위해 시나리오를 탈고하고도 5년의 시간을 기다린 첨단 기술부터 해질녘의 어스름이 밤으로 바뀌는 과정을 카메라가 잡아내기까지 어둠을 초대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둠의 무한한 가변성이 지닌 매혹을 지금껏 주장했지만 시공간으로서 이를 규칙으로 설정한다면 어둠이 갖는 제약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경우, 두 번째 시즌에서 일레븐은 친엄마 테리와 소통하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다. 어둠 속에서 하혈하는 엄마를 부축하는 와중에 일레븐은 현실에서 테리가 반복해서 되뇌는 단어들의 배경을 마주한다. 이 과정을 위해 친절한 해설 같은 플래시백이 동원된다. 여기서 일레븐만의 공간이 일부 부서졌다는 고집스러운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럼에도 동요 없이 어둠을 긍정하는 건 검은 화면을 마주하면서 관객에게 발생하는 심상의 부피를 정의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앨리스의 독백을 들으며 당신은 무엇을 상상하는가. 아주 이상할 것이다. 너무 이상해서 두려워하거나 전율할 수도 있다.”


(“어둠 속의 일인극 혹은: 앨리스의 독백으로부터 일레븐의 초능력에 이르기까지”, 《오큘로》 006호 중에서)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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