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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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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 :650
저자 :마크 피셔
크기 :122×190mm
페이지수 :176
옮긴이 :박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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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나쁜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자유롭게 자본주의적 교환에 가담할 수 있다.” 우리 다수는 억압과 착취에 분노하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주시하면서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다. 이처럼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투쟁이 여전히 활발히 펼쳐지고 있음에도 이 반란들에는 한 가지 차원이 누락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라는 체계 자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마크 피셔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생각의 지평까지 잠식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그런 사회가 오기나 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처럼 대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를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특히 문화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분석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무의식에까지 스며든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진단하고,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균열을 파고들며, 그 균열을 파열로 이끌 수 있는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크 피셔는 21세기 들어 영국의 담론 지형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비평가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초 블로그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젊은 지식인과 비평가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며 신선한 담론을 생성하고 있을 때 피셔의 블로그 k-punk가 그 중심에서 비판적 지식을 활성화시켰다. 동료이자 음악 비평가인 사이먼 레이놀즈는 피셔의 블로그를 두고 “영국의 대부분 잡지보다 뛰어난 일인 잡지”며 대중문화, 음악, 영화, 정치학과 추상적인 이론 등이 저널리스트, 철학자, 친구, 동료 등에 의해 나란히 논의되는 “블로그 성좌”의 중심 허브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2009년 출간된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피셔의 첫 저작이며,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고조된 영국의 학생 시위 정국에서 젊은 세대 공중의 지지를 얻으며 그를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대열에 속하게 해 주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이후 피셔는 『내 삶의 유령들: 우울증, 유령학, 잃어버린 미래』와 『기괴함과 오싹함』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출간했고, 그런 뒤 2017년 초에 갑작스레 스스로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는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통받았고,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핵심 쟁점 중 하나기도 하다. 비록 개인적인 삶은 불안과 우울로 가득했을지언정, 피셔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 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되살리고자 노력한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2007~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파국이 임박해 보였고 수많은 사람이 타개책을 요구했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기이하게도 자본주의 자체는 여전히 건재해 보이며, 오히려 더 강하게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지은이가 말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적 상황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득세하는 오늘날에는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일 뿐 아니라 이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감각이 도처에 퍼져 있다. “그것은 어떤 만연한 분위기에 더 가까운 것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문화의 생산뿐 아니라 노동과 교육의 규제도 조건 지으며, 나아가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지은이는 과거를 장밋빛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안’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대안의 가능성이 훨씬 더 고갈되어 있는 것만 같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착취와 억압으로 사람들을 억누를 뿐 아니라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바람직한 체계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우리의 욕망까지도 자본에 의해 사전에 구성되며, 이를 벗어난 외부를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결과 “회고에만 몰두하며 어떤 진정한 참신함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문화”가 우리 시대의 주된 조류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회 운동이 자본주의의 부정의에 활발히 저항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운동들도 자본주의를 극복할 전망을 보유하지는 못한 채 국지적인 활동에 몰두하며, 얼마간은 체념 상태에 빠진 채로 스스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그처럼 빈틈없다면 그리고 현행의 저항 형태가 그처럼 희망 없고 무기력하다면 실질적인 저항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것이 지은이가 던지는 질문이고,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지배에 균열을 낼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본주의의 표면적인 ‘리얼리즘’에 리얼리즘 같은 것은 없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사회 체계이기는커녕 자신이 약속하는 바를 결코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임을 폭로하고 비판하려 한다.

지은이가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비판하면서 주로 살펴보는 현장은 ‘교육’ 영역이다. 그에 따르면 교육 분야는 영국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이 시험된 일종의 실험실이었으며, “그렇기에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효과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이와 함께 그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로 ‘개인화된 정신 건강’과 ‘새로운 관료주의’라는 쟁점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가 이전의 복지국가 모델을 대체함에 따라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고 ‘장기적인 것’이 근절되었고, 사회의 전 영역이 ‘개인화’와 ‘유연화’라는 명령에 종속되었다. 이런 변화는 개인들에게 참기 어려울 정도의 압력을 가하며, 이를 반영하듯 정신 질환을 겪는 이의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왔다. “지난 30년간 진행된 광범위한 스트레스의 개인화를 수용하는 대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필요가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 특히 그토록 많은 청년이 아프다는 사실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수가 의미심장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며, 지은이는 개인의 책임이나 화학적 문제로 돌려지는 정신 건강 문제를 정치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노동이 유연화되고 개인의 창의성이 중시되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는 역설적으로 관료주의 역시 확대된다. 왜냐하면 정량화하기 힘든 노동 형태를 측정하려면 추가적인 관리 및 관료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외치는 동시에 실제 성과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보여 주기’식의 데이터를 끝도 없이 요구한다. 더불어 관료주의의 비대화는 책임 회피의 문화를 야기하며, 그에 따라 관료주의적 절차들은 어떤 개선이나 물음에도 완강히 저항하게 된다. 이 같은 ‘새로운 관료주의’, ‘시장 스탈린주의’는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할 뿐 아니라, 잦은 관리와 평가로 노동자들이 감시를 내면화하게 만든다. 
교육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학생들은 무기력과 우울에 젖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특징짓는 것은 무쾌락 상태지만, 오늘날 학생들의 우울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시험 통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교육은 이들이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하지 못하고 주어진 과정만을 수동적으로 반복 습득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 교사들은 조력자와 훈육자라는 역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나아가 실적 중심의 관료주의 탓에 실질적인 교수법을 고민하지 못하며, 학생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끝없이 평가해야 하는 매트릭스의 미로에 갇혀 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듯이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새로운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가 등장할 때만 이런 숙명론을 극복할 수 있다.”

지은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책임’에 호소하는 오늘날이야말로 ‘가장 전체적인 차원의 구조’에 내기를 걸어야 하는 시기라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쓰레기 처리의 경우 ‘개인 모두’가 재활용해야 한다고 전제되지만, 이때 가려지는 것은 ‘구조’는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활용을 ‘모두’의 책임으로 만들 때 구조는 자체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러난다.” 환경 재앙의 문제도 마찬가지며, 그러므로 자본주의 아래 황폐화되고 있는 사회 영역 어디에서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지배와 그것이 야기하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그에 적합한 주체가 구축되어야 한다.
2007~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약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당성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가 사라지더라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다른 방식으로 지배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일관되고 신뢰할 대안이 없다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앞으로도 정치경제적 무의식을 지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대응을 재활성화하려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었으나 만족시킬 수는 없었던 욕망들에 기반”해야 한다. 그 한 사례가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사안인 관료제의 축소며, 노동자들이 감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 투쟁이 필요하다. 더불어 만연한 정신 건강 문제를 정치화하고 각 개인의 심리적 요소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인인 자본을 겨냥할 수 있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 비평가인 지은이는 영화와 음악, 문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지배를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의 주된 매력 중 하나는 추상적인 철학 이론을 이용해 구체적인 현실을 적절히 설명하며, 각종 문화 생산물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정서를 설득력 있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불임’이라는 주제는 더는 ‘새로움’이 생겨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오늘날 문화의 불안과 연결되며, 얼핏 지구를 황폐화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듯 보이는 「월-E」는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반자본주의를 상연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양심의 가책 없이 소비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다”. 또한 90년대 영화 「히트」에 등장하는 갱스터들은 70년대의 「대부」 같은 영화 속 마피아들과 대비되어 자본주의의 새로운 유연화를 체현하는 캐릭터로 해석된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시간성’에 대한 지은이의 성찰이다. 이 책에서 「메멘토」나 「이터널 선샤인」, 본 시리즈 등은 기억 장애에 시달리는 포스트모던 시간성의 극명한 사례로 제시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문화에서 시간은 이율배반적이다. 한편으로 이 문화는 현재적인 것과 즉각적인 것만을 특권화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추구한다.
이 같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문화적 분석은 일차적으로 지은이가 살고 있던 영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통찰들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삼기에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한국 역시 점점 더 정신 건강 문제가 화두로 제시되고 있으며, 지은이가 말한 ‘쾌락주의적 우울증’이 젊은 세대를 포획하고 있다. 또 성과 측정에 따른 관료주의적 행정은 한층 심각한 수준이며, 노동자에 대한 외적 감시 및 감시의 내면화라는 문제도 절실히 정치화를 요하고 있다. 더불어 지나치게 회고에 몰두하는 동시에 즉각적인 순간에만 고착되어 있는 문화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지은이가 영국에 관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런 사안들에 대한 개입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현재’의 문화적 불만이 집약되어 있는 영역을 정치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그럴 때만 반자본주의가 사람들을 결집하고 유효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사소한 사건들도 자본주의 리얼리즘 아래서 가능성의 지평을 표지해 온 그 반동의 회색 장막에 구멍을 낼 수 있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시 한 번 무엇이든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 고유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비판에 착수하기 시작해야 하며 아마 이 책에서 이를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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