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 포르노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
판매가격 : 17,000
적립금 :850
저자 :집시계급, 장혜령, 서호준, 하혜희, 송승언
출판사 : 코드프레스 [출판사 바로가기]
크기 :138x208mm
페이지수 :344
편집 :김재연
교열 :김순
디자인/사진 :코드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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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묘사가 다수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집시계급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쓴 것이다.


 

저자 소개


집시계급: 전쟁에 공헌하지 않기 위해 노숙자 생활을 자처한 어느 일본 여자를 기리는 사람들이다. 노동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전쟁무기와 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직시한다.


 

책 소개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책들이 제작되고 있다. 쓰레기 같은 책들이. 이번에 출판할 집시계급의 소설 역시 그 쓰레기에 한 방울을 보태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은 이 시대에 왜 소설이 불가능한지, 그 한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기꺼이 원죄를 짊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르는 사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 신도 예술도.


 

목차


컬트 포르노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

5



라만차의 기사여, 풍자의 풍차를 돌려라!

261



혼자 행진하는 사람

장혜령

299



돌아와도 괜찮은 페이지

서호준

311


 

낭독: 대원서

하혜희

318



빛은 돌이킬 수 없다

송승언

323



친애하는 와츠에게

339


 

발췌



[……]


푸에지아 바스켓


당신은 자신을 지칭할 때 ‘우리’라는 주어를 자주 쓰는데 그것은 집시계급이 복수라는 의미인가요? 원래는 당신 말고도 다른 사람이 그 그룹에 속해 있었나요?


 

집시계급


모르겠어요. 계급이라고 하면 원래 복수여야 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우리도 모르겠네요. 아마 나만 남겨놓고 다들 떠났나 봐요. 사람들이 떠나면 떠날수록 더 집시계급 같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계급의 정체성이라는 게 사람들이 많을수록 옅어지고, 떠날수록 더 분명해지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선명하다고 할까? 과연 능동적인 고립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니, 모르겠습니다.


 


푸에지아 바스켓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요. 당신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패러디와 장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체호테’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발표했지요. 누군가는 그 이름이 ‘체홉’과 ‘돈키호테’의 합성이라고 주장하더군요. 패러디나 패스티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설적인 효과에 대해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장르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집시계급


골치 아픈 얘기군요. 먼저 답변을 하기 전에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그저 꼴리는 대로 글을 쓸 뿐이니까요. 더 실감나게 표현하면 우리는 우리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설에 의해 우리가 쓰인다고 느낄 때가 많지요.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작가를 쓰는 겁니다. 집시계급은 글자들과 문장들 사이에서 완전히 매몰돼버리지요. [……] 과학자들의 비난을 각오하고 말하자면 우리가 추구하는 소설이라는 공간이야말로 양자적인 장소지요.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독자와 텍스트도 그 공간에서는 검은 구멍이 되지요. 예를 들면 우리의 소설은 철저히 독자들을 무시할 수 있지요. 욕을 할 수도 있지요. 독자 너 따위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감히 나를 읽으려 하냐고 따지는 거지요. 텍스트 스스로가 아무에게도 해독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거지요. 낡은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침묵하고, 면벽할 권리는 주장하는 거지요. 책벌레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고, 똥과 먼지로 분해될 권리를 주장하는 거지요.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기 위한 텍스트의 노력은, 멍텅구리들이 흔히 말하는 무의미의 의미 혹은, 무용의 유용과 같은 말장난과는 차원이 다른 거지요. 그것은 훨씬 더 공격적이고 정치적이지요. 심지어 그것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를 수도 있지요. 누군가가 페이지를 여는 순간 자연발화를 일으켜 분신하는 거지요.


텍스트가 텍스트임을 스스로 포기할 때, 텍스트가 자살을 선택할 때 패러디나 패스티시는 유용한 도구로 쓰이지요. 텍스트는 텍스트 스스로를 패러디하지요. 결과적으로 패러디는 패러디의 패러디가 될 수밖에 없지요. 정직한 텍스트일수록 패러디를 패러디하지요. 좋은 소설은 이것은 소설일 뿐이야, 라고 미리 말해주는 소설이지요. 패러디는 역사를 소재로 삼지 않지요. 패러디는 오히려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를 소재로 삼지요. 패러디는 기사도에 관해 쓰는 게 아니라, 타락한 기사도의 광기에 관해 쓰지요. 패러디는 과거에는 그리 관심이 없지요, 패러디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에서 미래로 뻗어나갈 뿐이지요. 과거는 미치지 않았지요, 미친 것은 과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 드는 현대인들의 욕망이지요. 패러디는 역사를 재해석하지 않지요. 패러디는 역사를 재해석하는 사람들을 거꾸로 재해석하지요. 패러디는 재해석의 재해석이지요. 따라서 패러디와 역사 수정주의자들과의 숙명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지요.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잔머리를 굴리고, 비겁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제국주의자들보다 오히려 질이 더 안 좋은 놈들이지요. 패러디에게서 노쇠하여 죽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지요. 패러디에겐 폭력적인 아버지가 남긴 선명한 흉터가 있을 뿐입니다. 모든 ‘그때 만약’과 싸워야 하지요. 모든 ‘어쩔 수 없었어’는 죽어 마땅하지요.


[……]


 


푸에지아 바스켓


진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좀더 듣고 싶군요.


 


집시계급


대부분의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지지요. 많아봐야 세 개의 진영이지요. 시뮬레이션하면 세계는 바둑판이나 체스판인 거지요. 구성원들은 각 진영에 속한 돌이나 말들인 거지요. 대표적인 게 정당정치지요. 양당의 주도하에 굴러가는 의회민주주의란 진보당과 보수당이 기획한 영구집권 시나리오에 불과한 거지요. 선거란 지배를 받기 위해 두 개의 진영 중에 좀 덜 얄미운 쪽을 선택하는 행위지요. 두 개의 정당은 언뜻 보기에 경쟁하고 대립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동반자지요. 권력을 가진 진영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진영의 욕망은 언제나 일치하지요. 머리는 두 개지만 몸은 하나인, 히드라인 거지요. 민주주의란 가면을 쓴 독재지요.


문단도 마찬가지지요. 똑같은 욕망을 가진 진영들이 ‘상상 오르가슴의 공동체’를 형성하지요. 상상 오르가슴이란, 오르가슴을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가짜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하는 거지요. 사실 그들은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도 없고, 오르가슴이 무엇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진영에 속해 있는 이상 그들은 느끼는 척하는 수밖에 없지요. 남들이 느낀다고 하니까 자신도 느껴야 하지요. 상상 오르가슴은 전염성이 강하지요. 두 개 혹은,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진영에 속해 있는 이상, 상상 오르가슴의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


(「푸에지아 바스켓과의 인터뷰 —제28회 세계집시포럼」 중에서 (비수록))


 


삭제된 자료 대부분은 ‘동물혁명’이라는 민간 단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살해당한 사리사리센타도 이 단체의 비밀 회원이다. 동물혁명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동물혁명의 역사는 포경과 코끼리 사냥이 극에 달했던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이들의 입장은 단순했다.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잔혹한 동물 학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후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동물의 적이 곧 우리의 적이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차라리 테러리스트 편이다!’


이들의 사상은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의 생각보다도 급진적으로 나아가는데, 예를 들면 동물과 인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그랬다. 이들이 홍보 자료로 만든 「개 같은 사랑」이라는 동영상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동물 포르노 취급을 받았다. 그 밖에도 유인원, 해양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과 인간이 성교하는 동영상이 실제로 제작되었다.


동물혁명은 자체 민병대를 조직했는데 동물 학대 혐의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 희생당한 동물 대신 복수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이들은 인터넷에 고양이 학대 동영상을 올린 일본 중학생을 찾아내 소년이 고양이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소년의 이마에 못을 박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이코패스들도 동물혁명의 주요 목표물이었다. 사이코패스 대부분이 어렸을 때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동물혁명 소속 연구팀은 인간 게놈 중에 동물을 학대하는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는지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런 유전자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동물 범죄 예방 차원에서 민병대의 활동 범위가 크게 확대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들은 학대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에 대한 선제공격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87-88쪽)


키메라™ 실종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소설가와 탐정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기본소득과 영감이 필요하다. 나는 성벽 주위를 돌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도롱뇽수도원의 둘레는 정확하게 2477걸음이었다. 동물혁명이 이 사건의 배후일까? 마츠코는 정말 고양이해방전선의 첩자였을까? 점점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처럼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인간이 탐정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10미터 앞에서 사슴벌레 한 마리가 지그재그로 걸어오더니 내 귓구멍으로 들어왔다. 아니,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살고 있던 놈이었다. 무언가로 잠시 덮어뒀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놈이었다. 사슴벌레는 고막을 뚫고 뇌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해마와 시상하부를 지나 두정엽에 도달했다. 매너리즘이 나를 유혹했다. 자살해라. 자살해라. 자살해버려라.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섹스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즐기는 순수한 섹스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성행위가 아니다.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함께 팬티 바람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느껴지는 유대감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인공정액과 인공쿠퍼액은 말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채워 넣으려면 돈이 든다. 돈이 든다. 돈이 든단 말이다. 끊었던 약에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숨겨둔 LSD를 복용한 것이다. 나는 잉태를 바라며 탑돌이를 하는, 불임의 젊은 마님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수도원의 성벽을 따라 다섯 바퀴나 돌았다. 언젠가는 자비로운 땡중이라도 나타나 영감이 메말라버린 불모의 사막에 단비를 뿌려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나, 탐정 쿠옹에게는 땡중의 육보시가 간절했다.


(98-99쪽)


모래사막 언덕 위, 세 명의 도둑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 이들에게 메피스토가 찾아온다. 예언에 의하면 두 명은 유혹을 물리치고, 한 명은 굴복하게 될 것이다. 도둑 중 한 명이 말했다.


“주여, 정녕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늘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돼지 가면을 쓴 사형 집행자가 예수라는 이름의 도둑에게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주를 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처음에 예수는 제안을 거절한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는 다시 물었고 이번에도 하늘은 침묵했다.


사형 집행자가 최후의 유혹을 한다.


“여기서 혁명을 포기할 텐가? 주를 버려라.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해주겠다. 마지막으로 묻는 거다.”


도둑의 왕 예수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주를 버리겠습니다.”


사형 집행자는 돼지 가면을 벗고 송곳니로 예수의 목을 문다.


예수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면서 피가 분수처럼 하늘로 솟구친다. 모래바람이 예수의 피를 흩어버린다. 예수는 즉사한다.


그 자리에 있던 군중은 공포와 함께 오르가슴을 경험한다.


모든 게 끝났다. 혁명은 실패했다.


더이상 이웃을 사랑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시체는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수의에 싸여 무덤에 안치된다.


3일 후, 영생을 얻은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외면한다.


그들은 이제 사랑의 공동체가 아닌, 오르가슴의 공동체가 되었다.


오르가슴의 공동체는 부활한 예수가 부담스럽다.


더이상은 싸우고 싶지 않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가족을 버리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혁명에 비하면 독재자의 핍박은 얼마나 달콤한가.


예수는 자신을 받아줄 교회를 찾아 세계 각지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부활한 적그리스도는 혁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웃을 사랑하라.


그는 사랑에 집착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148-150쪽)


영화를 보고 나온 사내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의 머릿속엔 쇠사슬로 자기 몸을 묶고, 다시 그 사슬을 끊어내던 곡예사 남자의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역겨웠지만 그 모습엔 묘하게 자신을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는 그 미치광이 사내가 자기 안에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을 떨치려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러나 억누르려 할수록 곡예사 남자가 포효하는 소리에 그는 온몸이 떨리고, 어느새 그 미치광이가 자기 안에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장혜령)


그분이 오른쪽 어깨만 편안하게 해주시고 왼쪽 어깨는 내버려두어서 왼쪽 어깨는 너무 아팠어요. 장마가 이어졌어요. 비가 너무 와서 몇 번 빠지다가 자연스럽게 태극권을 그만두었고, 그 후로는 온몸이 아팠어요. 한번은 회사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정도는 누구나 아픈 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맞는 말인 것 같았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어깨 아프지? 했더니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정말 아프다고 했거든요.

(서호준)


혜희는 바깥에 나가기에 앞서, 먼저 그대의 즐거운 것을 가지라 말한다. 구슬 같은 것. 구슬 같은 게 뭐가 즐겁다는 말이겠니. 그래도 그런 것을 가져라. 그런 것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들여다보고, 빛바래 버리기 전에. 동이 트기 전에. 그대가 잿더미가 되기 전에. 빛나는 비밀 같은 것을 가져라. 어둡지 않은 것으로,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혜희 속삭이고 메가폰을 든다.

(하혜희)


학수는 스탠리에게 시골길을 걷게 했고, 스탠리를 사무실에 안전하게 가뒀고, 스탠리의 아내를 만났고, 스탠리를 길바닥에 쓰러지게 했고, 스탠리를 리프트에서 뛰어내리게 했고, 스탠리를 박물관으로 가게 했고, 스탠리가 있는 건물이 폭파되도록 만들었다.

(송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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