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고] National Flags: Colors and Sh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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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은우
출시일 :20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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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의 색과 형태들"은 전세계 193개국 국기를 색과 줄무늬, 형태로 분리·나열하여 만든 책이다. 
"National Flags: Colors and Shapes" is a book composed of all colors, stripes, and forms which can be found from the national flags of 193 countries in the world.

아래는 이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말과 활> 9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건 아니다 - 이은우의 책 에 대해.
임경용, 김형진


먼저 임경용이 쓴다

여기에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이은우, 2014, 비트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책을 꼼꼼하게 읽지 말 것. 그리고 책에 있는 문자를 해석하려고 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의도를 '사전'에 숙지할 것. 이건 좀 이상하고 어색한 충고다. 독자의 지적 능력이나 관심, 취향에 따라 독서를 그만두거나 책을 던져버릴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안에 있는 문자를 읽는 행위를 가리킨다. 독자는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저자의 의도롤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니.
글이 아닌 사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진집의 경우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진집은 사진과 그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있다. 그리고 글로 명시되진 않지만 그 책 전체에 어른버리며 배회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 사진집이란 그러니까 사진과 부수적인 글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매체인 셈이고, 이 경우에도 독서 이전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미루어 짐작할 방법은 없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오자. 이 책은 작고 탄탄한 검은 색 표지로 감싸져 있다. 그 위에 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번역하자면 <국기: 색과 모양>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이것이 전부이다. 검정색 하드커버에 싸여 있는 종이는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한다. 들어보면 꽤 묵직하다. 1000페이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우선은 책을 집어서 본격적으로 읽기 이전에 보이는 책의 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의 표지는 검정 상자의 뚜껑이나 검게 칠한 각목의 표면처럼 생겼다. 탄탄하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책 표지는 저자나 출판사가 생각하는 책의 정의이기도 하다. 그 책이 어떻게 읽혀졌으면 하는 욕망이 표지 안에 투사되기도 한다. 저자와 독자 사이에 있는 욕망의 차이 때문에 독자는 표지만 보고 책을 구입했다가 실망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은 그러한 욕망이나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의 정점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표지는 투명하다. 표지가 투명한 비닐에 인쇄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표지와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표지 얘기를 하자니 몇년 전 직접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만든 책 10여권을 들고 국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서점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책의 입점을 심사하는 직원은 책을 한번 쓱 훝어보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표지에는 한글로 크게 제목이 들어가야 한다.”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것은 독자가 책을 선택할 때 (구입할 때) 도움을 준다.” “표지는 컬러여야 한다.” “책을 만들 때 서점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책등에는 책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야 하며, 오랜 시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뿐이었다. (비꼬는 의도는 전혀 없다) 장황하게 자신의 책표지론을 펼친 그 직원은 결국 내가 가지고 간 10권의 책 가운데 단 한권만을 골랐다. 나는 빈정이 상했지만 내가 예상했던던 것을 직접 확인했다는데 만족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 자리를 떠났다.
아직 이 책의 표지를 열지 않았다.

임경용의 글을 받아 김형진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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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 상자나 검게 칠한 각목 혹은 벽돌처럼 생긴 이 책은 거의 1000쪽, 정확하게는 958쪽이다. 크기는 가로 105밀리미터에 세로 148밀리미터. A6다. 이 크기로 958쪽짜리 책을 만드는데 드는 품은 상당하다. 국전지를 반으로 잘라 한면에 16쪽씩, 양면 32쪽을 인쇄했다고 가정해본다면 이 책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모두 60번 인쇄기를 세웠다가 다시 돌리기를 반복해야 했을 것이다. 만약 책의 완성도를 위해 국전지를 1/4크기로 잘라 한면에 8쪽씩, 양면 16쪽으로 인쇄했다 친다면 도합 120번씩이나 인쇄기를 멈추고 인쇄판을 새로 갈아 끼우고, 색을 맞추는 과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 사이 인쇄기장은 얼마나 눈치를 줬을 것이며, 또 옵셋 인쇄기 파우더는 얼마나 들이마셔야 했을까. 생각만해도 아득하다.

2
어쨌든 이 까마득한 과정을 거쳐 나온 이 책에는 총 193개 나라의 국기가 실려있다. 193은 현재 유엔에 정식으로 가입되어 있는 국가의 수다. 이 숫자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를 합한 것이냐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지난 런던 올림픽 참가국 수만 헤아려도 204개에 이른다. 피파 가입국은 이보다도 많아 208개국이고, 세계육상연맹에는 모두 212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심지어 한국산 동영상 재생 플레이어인 곰플레이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숫자는 217개국이라고 한다.
숫자가 미친 년 널 뛰듯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애들이 인정해주냐, 아니냐에 따라 나라가 되기도 하고, 그냥 부족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쉽게 말해 내가 한평 정도의 땅을 사서 그 땅에 이름을 짓고 독립을 선언한다 한들 그걸 이웃나라가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이도저도 아니라는 말이다. 지구 상엔 이런 땅과 사람들이 꽤 있다. 사정이 잘 알려진 티벳도 그중 하나고, 이탈리아의 베네토,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벨기에의 플랑드르, 독일의 바바리아 등도 힘 센 이웃과 역사적으로 얽혀 있다는 이유로 독립국이 되지 못한 지역들이다. 이중 가장 사정이 나은 건 유엔의 옵저버 자격이라도 가지고 있는 두 나라(?), 바티칸시티와 팔레스타인이다. 가장 안된 건 중국 탓에 졸지에 전 지구적 왕따가 되버린 대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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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기에 대한 뉴스가 몇개 있었다. 하나는 스코틀랜드 독립과 관련된, 좀 그럴 듯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벌어진 유치한 해프닝이었다. 얼마전 시행된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이런 질문이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면 대영제국의 국기는 어떻게 될까,하는. 알려져있다시피 영국의 국기 유니온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사용하던 세개의 국기를 말 그대로 '유니온'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스코틀랜드가 빠질 경우 그 모양이 어떻게 될지는 꽤 흥미로운 이슈거리였다. 원칙대로 하자면 파란색 배경을 뺀 적색 십자가와 적색 엑스표만 남고 말텐데 그걸 보고 영국을 떠올리기란 참 난망한 일일터였다. 결국 부결되고 말아 그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쳐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두번째 뉴스는 한국 인천의 얘기다. 개막을 앞둔 인천 거리에서 45개 참가국의 국기가 휘날리다 어느날 갑자기 모조리 사라진 일이 있었다. 북한의 공화국기가 펄럭대는 꼴을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보수단체 회원들의 항의와 민원의 결과였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북한 국기만 내릴 것을 요구했을테지만 명색이 국제행사인 마당에 그럴 순 없었던 조직위원회는 그냥 모든 국기를 내리기로 통큰 결단을 해버렸다. 참으로 눈물겹게 세심한 배려다.

김형진의 글을 받아 다시 임경용이 쓴다.

이제 책을 열어보자. 이 책은 193개 국기의 색과 모양을 분해해서 보여준다. 정렬이나 분해의 원칙이 있을 텐데 독자가 그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국기에 사용되는 색이나 모양은 역사적 맥락에 따라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의미는 읽히지 않는다. 여기서 국기는 색과 다양한 모양으로 그려진 납작한 평면처럼 다뤄진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색과 모양은 CMYK와 0과 1의 디지털 언어로 번역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색과 모양을 원칙에 따라 정렬하면 된다는 소리이다. 이 과정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일본 국기를 그린다고 생각해보라. 적당한 종이에 빨간 잉크로 동그란 원을 그리면 일본 국기가 된다.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본 국기를 그렸을까.
그러나, 김형진이 국기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했지만, 국기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심지어 국기를 훼손하는 것은 경범죄로 형법에서 금지되어 있다. 형법 제3장 제105조.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시각적 요소가 모인 시각물이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그 상징을 훼손하면 공동체는 벌을 준다는 합의까지 했다.
다시 이 책을 들여다 보자. 색과 모양은 국기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국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신의 몸과 같은 의미로까지 격상된다. 국기를 훼손하는 것이 이 책을 만든 이은우 작가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이 책은 신체절단이라는 취미를 가진 연쇄 살인범이 국기를 편집증적으로 절단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늘여놓은 것처럼 읽힌다.
이은우가 2010년에 만든 <300,000,000 KRW>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 역시 매우 단순한데 그 당시 전국에 호가 3억 짜리 아파트의 평면도를 모두 모아서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수집된 평면도는 평수에 따라서 작은 소책자로 정렬되었고 7권의 소책자는 비닐 박스에 담겨져 책의 꼴이 되었다.
<300,000,000 KRW>도 이 책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파트는 특정한 지역에 위치한 ‘공간’일 뿐이고 그 ‘공간’은 평면도라는 공간을 재현하는 건축 언어로 번역가능하다. 평면도 상의 차이는 아파트가 점유하는 공간의 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20평과 50평 아파트 평면도의 차이는 사소하지만 실제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었을 때의 차이는 아득하다. 그 아득함,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현실로 구현되었을때 가지는 질적인 도약.
우리는 허약한 가상이 견고한 실제로 변화하는 과정을 매일 일상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매일 쳐다보는 휴대폰과 컴퓨터, 텔레비전 화면이 그렇지 않은가? 그 화면이 보여주는 가짜 현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상성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잊고 그 화면 속에 몰입해서 살아간다. 이은우라는 작가가 책이라는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한 것도 가상성이 가진 허약함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그토록 견고하게 만든 것도 왠지 그런 이유처럼 느껴진다.

다시 임경용의 글을 받아 김형진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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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를 직접 만들어 본다고 가정해보자. 너무 독특한 것말고, 누가봐도 ‘이건 국기잖아’라고 할만한 보편적이고 그럴듯해보이는 가짜 국기 말이다. 가장 먼저 모양을 정해보자. 아무래도 세로 혹은 가로로 삼등분하는 선을 긋는게 좋겠지. 프랑스나 러시아의 국기처럼 말이다. 조금 멋을 부려보자면 노르웨이나  핀란드처럼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십자가를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국기처럼 대각선을 사용하거나 유럽 국기에서 자주 보이는 문장(紋章)을 응용하는 건 자칫 어설퍼 보일 수 있으므로 피하도록 한다. 모양을 정했다면 이제 색을 정할 차례다. 여기선 위키피디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위키피디아의 ‘국기(National Flag)’ 항목에 따르면 전 세계 국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색은 빨강색이고 파랑색, 흰색, 녹색, 노랑색, 검정색이 그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색들을 어떻게 조합할지 결정할 차례다. 가장 흔한 조합은 빨강-파랑-흰색을 한데 섞는 것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을 포함한 40개가 넘는 나라가 이 조합을 따르고 있다. 북한 국기 또한 이 조합으로 만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빨강과 흰색의 조합인데, 모두 30개 가까운 나라의 국기가 이 두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일본과 스위스, 캐나다, 홍콩 국기가 그 예다. (한국 국기는 빨강, 파랑, 흰색, 검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네가지 색을 한꺼번에 사용한 국기는 태극기가 유일하다.)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을 세로 혹은 가로로 삼등분하고 빨강, 파랑, 흰색을 조합한다면 우리는 꽤 그럴 듯해 보이는 국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조합이 너무 뻔하거나 지나치게 유럽풍으로 보인다면 녹색이나 검정색, 혹은 노랑색을 섞어 볼 수도 있다. 녹색과 노랑을 넣는 것만으로 당신의 국기는 꽤나 아프리카스럽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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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기라는 게 있었다. 1990년대, 주로 국제규모의 스포츠 행사에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나서면서 사용했던, 이를테면 상상의 통일 국가 국기였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처음 제안된 이 깃발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남북이 합의한 문구에 따르면 한반도기의 모양새는 다음과 같았다.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는 것으로 하되, 한반도와 제주도를 상징적으로 그려 넣고, 독도, 마라도, 마안도 등 기타 섬들은 생략”한다. 이 도안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재일 민단과 조총련이 합의해 그린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3.1운동 때 만해 한용운이 흰바탕에 청색 한반도를 그린 깃발을 제안했던 것을 받아들여 응용했다는 설도 있다.
깃발에 자신의 영토를 그려넣는 이 방식은 사실 굉장히 독특한 것이다. 전 세계의 국기 중 자신의 영토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은 (정식 국기가 아닌 한반도기를 제외한다면) 몇년전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가 유일하다. 파란 배경에 여섯개의 별, 황금색 영토로 이루어진 이 독특한 국기는 2007년 2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난 후 국제 디자인 공모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디자인 공모를 통해 결정된 세계 유일의 국기일 것이다. 이 국기를 디자인한 무하메르 이브라히미는 자신의 도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기의 파란색은 코소보 국민들이 유럽-대서양 기구로 통합되려는 열망을 표시하고, 여섯개의 별은 코소보를 이루고 있는 여섯개의 인종을, 마지막으로 황금색은 코소보의 영토를 나타낸다" 참 깨알 같지만 촌스러운 설명이다.

3
다시 이 책 으로 돌아와보자. 임경용이 말한 것처럼 이 책은 CMYK의 조합과 0과 1이라는 디지털 언어로 치환된 납작한 색면 배열에 지나지 않는다. 추측해보건데 저자는 사실 국기라는 대상 자체보다는 그것이 지닌 색상과 조합의 규칙 자체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나열을 통해 1000여 쪽에 이르는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이 만한 책을 채울만큼 다종다양한 종류의 색깔과 조합규칙을 추출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이 국기이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건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데 이은우의 관심은 국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그에게 사실로서 이미 주어져 있는 데이터들이다. 주관적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간단한 지적 노동으로 분해할 수 있고, 다시 재조합할 수 있는 데이터말이다.
하지만, 그의 동인이야 어쨌든 이 책은 우리에게 좀 더 미묘한 것을 요구한다. 위에서 임경용이 <300,000,000 KRW>이라는 책을 통해 말한 지점은 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기란 단지 국가와 국가를 구분해주는 시각 기호일 뿐이고, 그 기호는 평면에 배치된 색상의 조합일 뿐이다. 심지어 많은 국가는 색상과 조합 규칙 자체를 공유한다. 국기들의 차이란 단지 그 색상과 조합 규칙이 만들어내는 수리적 차이일 뿐이다. 빨강 하양 파랑을 세로로 나누면 프랑스가 되고, 가로로 나누면 러시아가 된다. 가로로 긴 빨간색이 위에 붙어 있으면 인도네시아가 되고 아래에 붙어 있으면 폴란드가 된다. 그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기 사이의 차이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실제 그것이 현실에서 발휘하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 차이를 통해 누군가는 어엿한 세계 시민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된다. 또 이 차이를 통해 공항 입국대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관광지 기념품 가게에서 환영을 받을지, 멸시와 무시의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지도 결정될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때문에 나와 당신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 될 수도, 혹은 꽤나 대단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때문에 나와 당신은 서로 적으로 취급할 수도, 피로 맺어진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이 이렇게나 두껍고 무거워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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